콘텐츠는 넘치는데, 왜 기억에 남지 않을까?
“내가 어제 본 영상이 뭐였더라?” 요즘 자주 하게 되는 말입니다. 분명 몇 시간 동안 유튜브 쇼츠와 틱톡을 봤고, 수십 개의 콘텐츠를 스크롤했는데도 정작 기억나는 건 별로 없습니다. 영상은 많았지만 ‘기억에 남는 장면’은 적고, 읽은 글도 많았지만 ‘생각이 머무른 문장’은 없습니다.
이런 현상을 경험하는 건 비단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콘텐츠 소비 방식의 변화 때문입니다. 특히 최근 급격히 증가한 AI 기반 콘텐츠가 이 변화의 중심에 있습니다. 사람을 대신해 콘텐츠를 만들어주고, 읽어주고, 요약해주는 AI 콘텐츠. 접근은 쉬워졌고, 속도는 빨라졌지만, 그만큼 콘텐츠의 ‘몰입도’는 떨어지고 있다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AI 콘텐츠에 잘 몰입하지 못하는 걸까요? 그리고 인간이 만든 콘텐츠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요?
AI가 만든 콘텐츠, 익숙한 패턴의 반복
AI 콘텐츠는 본질적으로 '패턴 기반'입니다.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해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던 말투, 구문, 구조를 학습하고, 그걸 조합해 새로운 결과물을 내놓습니다. 그래서 AI가 쓴 글은 대체로 ‘전형적’입니다. 문장이 매끄럽고, 구조는 논리적이며, 정보는 명확합니다. 초반에는 꽤 괜찮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너무 괜찮기’ 때문에 생깁니다. 특정한 감정의 기복이 없고,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표현이 반복되며, 예측 가능한 흐름으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콘텐츠가 잘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몇 분 후엔 기억에서 사라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AI 콘텐츠는 감정이 없습니다. 단어는 있을 수 있지만, 감정의 흐름, 맥락, 의도, 숨겨진 의미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이 제품은 정말 유용합니다"라는 문장은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왜 그런지’, ‘어떤 상황에서 그렇게 느꼈는지’에 대한 맥락이 빠지면 공감도 몰입도 생기기 어렵습니다.
또한 AI 콘텐츠는 종종 지나치게 반복적입니다. 텍스트 기반 블로그나 기사에서 문장 구조가 너무 일정하거나, 뉘앙스가 비슷하게 반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로 인해 독자는 몇 문장만 읽고 나면 흐름을 예측할 수 있게 되고, 그만큼 몰입도가 급격히 떨어집니다.
인간 콘텐츠, 완벽하진 않지만 공감하게 만든다
반대로 사람이 직접 쓴 콘텐츠는 종종 부족합니다. 문장도 다듬어지지 않고, 때로는 논리도 완벽하지 않죠. 하지만 오히려 이런 ‘어설픔’ 속에 진정성이 보이고, 독자는 거기서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한 블로거가 “사실 처음 이 제품을 샀을 때 별 기대 없었어요. 그런데 일주일 써보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라고 썼다고 해보죠. 이 문장은 AI라면 쓰지 않는 방식입니다. 기대 없었다는 고백, 사용 후 변화를 느끼는 과정, 글쓴이의 판단 변화는 모두 인간의 감정선과 경험에서만 나오는 것들입니다.
특히 스토리 구조가 있는 콘텐츠는 AI가 따라가기 어렵습니다. 시작, 갈등, 전환, 결말로 이어지는 구조에서 핵심은 ‘갈등’입니다. 갈등은 감정에서 나오고, 감정은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죠. AI는 이를 계산해낼 수는 있어도 ‘경험’하지는 못합니다.
또한 인간은 콘텐츠 안에 ‘사람’을 담습니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숨은 망설임, 단어 선택에서 묻어나는 성격, 문단 전환에 숨겨진 의도 같은 것들. 이런 요소는 독자나 시청자에게 “이건 사람이 쓴 거다”라는 감각을 주고, 자연스럽게 몰입으로 이어집니다.
몰입이란 무엇인가? 감정의 ‘동기화’
몰입은 단순한 집중이 아닙니다. 콘텐츠 안의 ‘의미’에 감정이 연결되었을 때 비로소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예를 들어 드라마를 볼 때 주인공이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에서 우리도 슬퍼지고, 누군가의 블로그 글을 읽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건 ‘감정이 동기화’된 상태입니다.
이때 중요한 건 사람의 경험입니다. 경험은 감정의 근거가 되고, 표현의 디테일이 됩니다. “힘들었다”고 말하는 AI보다 “그날은 정말 아무 말도 하기 싫었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훨씬 몰입감을 주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콘텐츠에는 ‘결’이 있습니다. 글이나 영상의 끝부분에서 남기는 여운, 의도적 미완성, 표현의 여백. 이 모든 요소는 독자의 감정을 머물게 하고, 콘텐츠와 연결되도록 돕습니다. AI는 아직 이런 ‘결’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AI 콘텐츠는 언제 유리할까?
물론 AI 콘텐츠에도 강점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정보 전달, 요약, 비교, 통계 등 ‘사실 중심’ 콘텐츠에서는 AI가 빠르고 효율적입니다. 뉴스 요약, 가격 비교, 제품 스펙 정리 같은 부분에서는 인간보다 정확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반복적인 패턴이 필요한 콘텐츠, 예를 들어 법률 문서, 보고서, 이메일 초안 등은 AI가 빠르게 도와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정을 전달하거나, 사람을 설득하거나, 스토리를 전달해야 하는 콘텐츠라면 인간의 손길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콘텐츠는 ‘정보’가 아니라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아직까지, 그리고 아마 한동안은 인간만이 제대로 만들어낼 수 있는 영역입니다.
결론: 선택의 기준은 '목적'이 되어야 한다
결국 어떤 콘텐츠가 더 좋은가, 더 몰입되는가의 판단은 절대적일 수 없습니다. 중요한 건 목적에 맞는 선택입니다.
빨리 정보를 얻고 싶다면 AI 콘텐츠가 적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깊이 이해하고 싶거나, 감정을 나누고 싶거나,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면 인간이 만든 콘텐츠를 선택하는 것이 훨씬 더 의미 있는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콘텐츠는 넘쳐나지만, 진짜 필요한 건 내 시간을 들일 만한 가치가 있는 콘텐츠입니다. AI가 만든 콘텐츠에도, 인간이 만든 콘텐츠에도 각자의 자리와 역할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구분하고, 목적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판단력’을 갖춘 소비자가 되어야 합니다.